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설계 & 계약 실무

건축 설계 단계별 이해 — 기본설계 vs 실시설계 차이

설계를 맡기기 전, 이 두 단계는 반드시 알아야 한다

건물을 짓기로 마음먹고 건축사 사무소를 처음 찾아가면, 십중팔구 이런 말을 듣게 됩니다. "기본설계 먼저 진행하고, 허가 나오면 실시설계 들어가겠습니다." 처음 접하는 분들은 설계가 두 번이나 필요한지, 비용은 따로따로 내야 하는지, 뭐가 다른 건지 좀처럼 감이 안 잡히실 거예요.

 

저도 처음에는 설계라는 게 그냥 도면 그리는 것 정도로만 생각했는데, 실제로 여러 프로젝트를 접해보면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. 기본설계와 실시설계, 이 두 단계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느냐에 따라 발주자로서 내리는 의사결정의 질이 달라지고, 나중에 발생하는 분쟁이나 추가 비용의 상당 부분을 미리 막을 수 있거든요. 오늘은 이 두 설계 단계가 각각 무엇인지, 어떻게 다른지, 그리고 발주자 입장에서 각 단계에서 무엇을 챙겨야 하는지를 최대한 실용적으로 정리해 드릴게요.

기본설계와 실시설계의 차이


기본설계란? 건물의 방향과 큰 그림을 결정하는 단계

기본설계(Schematic Design)는 말 그대로 건물의 전체 그림을 잡는 단계입니다. 어디에 얼마나 크게 지을지, 몇 층짜리로 할지, 어떤 구조로 공간을 배치할지, 주요 동선은 어떻게 흘러가게 할지 등 건물의 근본적인 방향성을 결정하는 과정이에요.

이 단계에서 만들어지는 도면은 통상 10~30장 수준입니다. 평면도·입면도·단면도처럼 건물의 전체 형태를 보여주는 도면들이 주를 이루고, 세부 치수나 자재 스펙은 아직 확정되지 않아요. 건축 허가를 신청할 때 관청에 제출하는 도면도 바로 이 기본설계 도면입니다. 따라서 기본설계가 완료되어야 비로소 허가 접수가 가능해지고, 프로젝트 일정이 본격적으로 돌아가기 시작합니다.

 

공사비 측면에서는 기본설계 단계에서 개략적인 금액 산정이 가능합니다. 물론 이 시점의 공사비는 정확도가 낮고 ±20~30% 오차가 나는 경우도 많아요. 그래도 발주자가 사업 타당성을 검토하고 초기 예산 계획을 세우는 근거 자료로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. "대략 얼마 정도 들겠구나"를 판단할 수 있는 첫 번째 기회가 기본설계인 셈이에요.

 

기본설계 단계에서 발주자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역할은 요구사항을 명확하게 전달하고, 방향을 확정 짓는 것입니다. 사용 인원, 필요한 공간 구성, 향후 증축이나 용도 변경 가능성, 운영 방식, 예산 상한선 등을 이 시점에 충분히 논의하고 정리해야 해요. 이 단계에서 "이 배치보다 저쪽이 낫겠다"는 판단을 내리는 건 비교적 저렴하고 유연하게 반영이 됩니다. 하지만 나중에 실시설계가 상당 부분 진행된 뒤에 방향을 바꾸면, 수십 장의 연관 도면을 다시 그려야 해서 비용과 시간이 크게 늘어납니다.

 

실시설계란? 시공사가 바로 공사에 쓸 수 있는 완성 도면 세트

실시설계(Construction Documents)는 기본설계에서 잡은 방향을 바탕으로, 실제로 시공사가 공사를 진행할 수 있을 만큼 상세한 도면과 문서 일체를 완성하는 단계입니다. 쉽게 말해, 기본설계가 "어떻게 지을지 결정"하는 단계라면, 실시설계는 "그 결정을 현장에서 실현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문서화"하는 단계예요. 도면 수량만 봐도 차이가 확연합니다. 기본설계가 수십 장 수준이라면, 실시설계는 건축·구조·기계설비·전기·소방 각 분야의 도면을 모두 포함해 100장이 훌쩍 넘는 경우가 많아요. 공장이나 연구소처럼 설비가 복잡한 건물은 200장을 넘기도 합니다. 각 도면에는 자재 규격, 마감재 종류, 부재 치수, 접합 방식 등 시공에 필요한 모든 정보가 담겨 있어요.

 

도면 외에 함께 작성되는 중요한 문서가 바로 시방서(시공 기준서)입니다. 시방서는 각 공종별로 어떤 자재를 쓰고, 어떤 순서와 방식으로 시공해야 하는지를 글로 명시한 문서예요. "콘크리트 타설 후 28일 양생", "외벽 단열재 두께 100mm 이상" 같은 기준들이 여기에 담깁니다. 이 시방서가 있어야 시공사가 정확한 견적을 낼 수 있고, 계약 후에도 "이건 설계에 없던 거다"는 식의 분쟁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습니다.

 

설계비 구조를 보면, 통상 기본설계 30%, 실시설계 70% 비중으로 책정되는 경우가 많습니다. 실시설계의 업무량이 그만큼 방대하다는 걸 반영한 거예요. 일부 발주자 분들이 비용 절감 차원에서 실시설계를 간소화하거나 생략하려 하는 경우가 있는데, 이는 오히려 나중에 더 큰 비용을 부르는 경우가 많으니 주의하셔야 합니다.

 

두 설계 단계를 나누는 이유, 발주자가 꼭 챙겨야 할 것들

"처음부터 실시설계만 하면 안 되나요?"라고 묻는 분들도 계세요. 이론적으로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, 현실에서는 거의 작동하지 않는 방식입니다. 기본설계 없이 바로 실시설계로 들어가면, 방향이 흔들렸을 때 수정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기 때문이에요. 건물의 방향성을 잡는 데 드는 비용보다, 이미 완성된 실시설계 도면을 수정하는 데 드는 비용이 훨씬 크다는 걸 실무에서 자주 목격하게 됩니다.

 

발주자 입장에서 실질적으로 챙겨야 할 포인트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.

첫째, 기본설계 완료 시점에 방향을 서면으로 확정할 것.

구두로 "좋아요" 했다가 나중에 "그때 그렇게 말한 게 아니었는데요"라는 상황이 생각보다 많이 생깁니다. 기본설계 검토 후 변경 사항이 없다는 확인을 문서로 남겨두는 게 양쪽 모두에게 안전해요.

둘째, 실시설계 도면이 나오면 시공사 견적 전에 반드시 도면을 확인할 것.

도면 없이 견적을 받으면 시공사마다 기준이 달라서 금액 비교가 어렵고, 나중에 설계변경이 발생할 때 추가 비용 산정의 기준 자체가 모호해집니다. 실시설계 완성 후 도면 기반으로 견적을 받는 게 원칙입니다.

셋째, 설계와 감리를 같은 건축사에게 맡길 때는 계약서에 감리 범위를 명확히 명시할 것.

실시설계를 한 건축사가 공사 감리까지 맡는 경우가 많은데, 이때 감리의 범위와 횟수, 책임 내용이 계약서에 명확히 들어가 있어야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할 수 있어요.

 

설계비는 전체 공사비의 3~5% 수준으로, 비중만 놓고 보면 작아 보일 수 있습니다. 하지만 설계 단계에서 결정되는 내용들이 나머지 95% 이상의 공사비와 공기를 좌우합니다. 설계에 투자하는 시간과 관심, 절대 아끼지 마세요.


핵심 요약

  • 기본설계: 건물의 큰 그림 결정 → 건축 허가 신청 기반, 개략 공사비 산정 가능
  • 실시설계: 시공 가능한 수준의 완성 도면 + 시방서 → 정밀 견적·계약의 기준
  • 기본설계 확정 후 방향 변경은 추가 비용 발생, 요구사항은 기본설계 단계에서 확정하는 것이 핵심

건축 설계 Process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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